[유주열의 동북아談說-70] 외교가 시(詩)를 만날 때
[유주열의 동북아談說-70] 외교가 시(詩)를 만날 때
  •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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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다하고 물길이 끊어진 곳에 
길이 없는가 했더니 버드나무 우거진 곳에
밝게 피어 있는 꽃 너머로 또 마을 하나”

미중관계가 험난하고 답답한 모습이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시진핑(習近平, 1953-) 중국 국가주석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시 인용한 그의 애송시 ‘유산서촌’의 한 구절이다. 2021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역사의 변절점에서 기후변화 문제 등 협력할 일이 많은 미국과 잘 지내보자는 시 주석의 바람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송의 우국시인 육유(陸游, 1125-1210)의 유산서촌(游山西村)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골 술이 걸다고 웃지들마소(莫笑農家臘酒渾)
풍년이라 손님에게 돼지 닭 정도 낼 수 있소(豊年留客足雞豚)
산이 다하고 물길이 끊어진 곳에 길이 없는가 했더니(山重水複疑無路)
버드나무 우거진 곳에 밝게 피어 있는 꽃 너머로 또 마을 하나(柳暗花明又一村)
퉁소불고 북치니 봄제사가 가까운데(簫鼓追隨春社近)
의관은 소박하여 옛풍속 남았구나(衣冠簡樸古風存)
이제부터 한가롭게 달구경이 허락된다면(從今若許閒乘月)
지팡이 짚고 밤중 아무 때나 문을 두드리라(拄杖無時夜叩門)

중국 지도자 중에 역사를 가장 좋아한 지도자는 신중국 건국의 아버지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 주석이다. 그는 항상 역사책을 옆에 두고 국가를 이끌었다고 한다. 중국 역사에서 마오 주석이 좋아했던 인물에는 조조(曹操 155-220)가 있다. 조조는 시를 잘 썼고 그의 두 아들 조비, 조식도 시인이다. 마오 주석은 ‘삼국지연의’로 조조가 제대로 평가되지 아니한 것에 불만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반영하듯 궈모뤄(郭沫若) 등이 조조를 재평가했다.

마오 주석은 한여름 화로 같은 베이징을 떠나 발해만의 바닷가 친황다오(秦皇島)의 베이다이허(北戴河)로 피서를 가면 조조의 ‘관창해’라는 시를 애송했다고 한다. 조조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올랐다는 갈석산을 찾아 발해만의 푸른바다를 바라보고 통일의 꿈을 키웠다.

동쪽 출정길에 갈석산에 올라 푸른 바다를 바라본다(東臨碣石 以觀滄海)
파도는 얼마나 힘차게 출렁이는가(水何澹澹)
섬들엔 산들이 우뚝 솟아있고 수목이 빽빽이 자라면서(山島竦峙 樹木叢生)
온갖 풀들이 무성하다(百草豊茂)
가을 바람이 소슬한 가운데 거대한 물결이 용솟음치는구나(秋風蕭瑟 洪波湧起)
해와 달이 마치 저속에서 나오는 듯하고(日月之出 若出其中)
은하수 찬란함도 그 속에서 펼쳐 나오는 듯하다(星漢燦爛 若出其裏)
지극히 기쁘도다. 내 뜻을 노래로 읊을 수 있음에(幸甚至哉 歌以詠志)

산전수전을 다 겪은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 주석은 달랐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신중한 자세는 그의 유훈인 28자 방침에서 잘 나타나 있다.

“냉정하고 조용히 관찰하되 쉽게 흔들리지 말고 침착하게 대처하고 힘을 아껴 보전하되 부족함을 잘 지켜 결코 나서지 말 것이며 자기 할 일은 잘해 나가야 한다”(冷靜觀察 穩住陣脚 沈着應付 韜光養晦 善於守拙 決不當頭 有所作爲)

덩 주석이 몇 번에 걸쳐 실각 하방됐어도 굴하지 않고 불도옹(不倒翁)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다시 일어선 것은 어려울 때 맹자(孟子)의 고자(告子) 편에 나오는 구절을 벽에 써 붙여 놓고 스스로를 달랬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환이 있어야 살게 되고 안락하면 죽는다”(生於憂患 死於安樂)라는 맹자의 말씀은 평생의 좌우명이었다.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할 때는 반드시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의 힘줄과 뼈를 지치게 하고 그의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나니 그렇게 하는 까닭은 작고 못난 타고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일찍이 할 수 없었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역할을 키워주기 위함이다”(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是故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마오 주석 사후 실권을 잡은 덩 주석은 1978년부터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면서 경제성장에 국력을 집중했다. 10년이 지나서부터 학생과 지식인들의 불만과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면서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했다. 덩 주석은 학생시위대에 동정적인 자오쯔양(趙紫陽) 총서기를 해임시키고 상하이시 당서기 장쩌민(江澤民 1926-)을 발탁했다.

장쩌민은 상하이에서 정규대학을 졸업하고 모스크바의 스탈린자동차 공장연수 경험으로 피아노 등 예능분야에도 관심이 많은 차세대지도자였다. 장 주석은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빚어낸 시를 외교현장에서 활용한다면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내다보면서 양국 관계발전을 한층 높인다고 생각했다. 그가 애송한 시에는 왕지환(王之渙 688-742)의 ‘등관작루’(登鸛雀樓)가 유명하다.

눈부신 해는 서산에 기울고(白日依山盡)
황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는구나(黃河入海流)
천리밖을 한 눈에 담으려면(欲窮千里目)
다시 한층 더 올라가야한다(更上一層樓)

1995년 11월 서울을 방문한 장 주석이 국빈만찬 참석에 앞서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면서 붉게 물든 단풍을 보고 두목(杜牧 803-852)의 ‘산행’(山行) 중 ‘상엽홍어이월화’라는 구절을 읊었다고 한다.

비탈돌길 따라 멀리 만추의 가을산에 오르는데(遠上寒山石徑斜)
흰 구름 일어나는 곳에 인가가 있음이라(白雲生處有人家)
수레멈추고 앉아 늦은 단풍 숲을 즐기노니(停車坐愛楓林晩)
서리 맞은 단풍잎새 2월의 봄꽃보다 더 붉네(霜葉紅於二月花)

한중수교의 역사는 비록 짧고 과거의 어려운 관계를 겪은 터라 새로 시작된 양국관계는 서리 맞은 단풍잎이 더 붉듯이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더 크게 발전할 것을 염원했다고 알려졌다. 

장 주석의 뒤를 이은 후진타오(胡錦濤 1942-) 주석은 임기 중인 2010년에 GDP가 일본을 능가 세계 2위로 급부상했지만 서방제국의 인정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후 주석은 두보(杜甫 712-770)의 ‘망악’(望嶽)을 애송하고 외교행사에서 인용하거나 주요 정상회담에 액자로 걸어두기도 했다고 한다.

태산마루는 어떠한가 하니(岱宗夫如何)
제와 노나라에 걸친 푸르름이 끝이 없구나(齊魯靑未了)
천지간에 신령스럽고 빼어난 것 모두 모았고(造化鍾神秀)
응달과 양지는 아침저녁 갈린다(陰陽割昏曉)
층층이 펼쳐진 운해는 가슴 후련히 씻겨내리고(盪胸生層雲)
새들이 눈을 크게 뜨고 둥지로 날아드는 모습을 바라본다(決眥入歸鳥)
반드시 정상에 올라(會當凌絶頂)
뭇산들의 작은 모습을 보리라(一覽衆山小)

중국 산동성의 태산은 해발 1535m 정도로 높은 산이라고 할 수 없으나 산동반도의 평지에 우뚝 솟아 역대 황제가 국태민안을 위한 봉선(封禪) 행사를 한 정치적 의미가 큰 산이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외교활동에 시를 읊어 마음의 뜻을 은유적이며 함축적으로 전달(賦詩言志)한 역사는 춘추시대부터 있었다. 공자도 “시를 배우지 않고는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고 하여 시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현대에 와서도 중국지도자들은 어려움이 있었을 때마다 외교전략으로 시를 적극 활용해 왔고 대중외교를 중시하는 미국도 중국의 고사와 옛 시를 외교협상에 인용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국과 교섭시에 인용한 맹자의 가르침이 있다. 

“산중의 작은길도 사람이 계속 다니면 큰 길이 되지만 한동안 다니지 않으면 잡초가 자라 길은 막혀버린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 則茅塞之矣)

미중 두 나라 지도자들이 잡초가 자라 길이 막히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고 하지만 맹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미중 신냉전이라는 비관적 평가가 나올 정도로 두 나라는 비바람 속에 한배를 타고 있는(風雨同舟) 모습이다.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유주열(외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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