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희의 음악여행 ㊲] 악보에 쉼표는 왜 있지?
[홍미희의 음악여행 ㊲] 악보에 쉼표는 왜 있지?
  • 홍미희 기자
  • 승인 2022.09.26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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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다 보면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다. 쉼표는 왜 있지? 음표로 충분한데… 쉼표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음악에서 음을 내지 않은 곳과 그 길이를 나타내는 표’ 또는 ‘짧게 쉬는 부분을 나타내는 문장 부호’로 정의된다. 사실 글에서 쉼표가 없다면 글의 의미 파악이 복잡해질 것이다.

작곡자의 생각을 현실화하는 수단인 음표는 쉼표라는 그림자를 가진다. 사람의 그림자가 그림자의 주인인 사람과 똑같은 모양과 움직임을 가지고 있듯이 쉼표는 그에 맞는 음표와 똑같은 길이를 가지고 조용하지만 정확한 목소리를 낸다. 쉼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휴식이다. 실제 음표는 note, 쉼표는 rest로 표기하고,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정류장은 페르마타 fermata(늘임표, 잠시 멈춤)라고 한다. 이렇게 쉼표는 음악에서 소리를 내지 않지만 길게 연주되는 소리의 피곤함을 덜어주고 프레이즈를 조절하는 휴식의 역할을 한다.

음표와 쉼표
음표와 쉼표

쉼표는 음악에서 마침표의 역할도 한다. 특히 성악곡, 노래에서 쉼표는 호흡과 함께 노래의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보통 4마디를 하나의 프레이즈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이 프레이즈를 어떻게 잘 표현하는가가 연주자의 음악성을 결정한다. 마침표 없이 흘러가는 문장은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할 것이다. 이 흐름은 비단 성악곡뿐 아니라 기악곡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나의 경우 학창시절 선생님께 레슨을 받을 때 자주 지적받던 요소가 “제발 노래 좀 불러라”였다. 음악의 흐름을 느끼고 그를 표현해야 하는데 그런 감정적인 흐름의 표현이 부족했었다. 이렇게 기악곡도 노래를 부르면서 프레이즈 즉, 흐름을 표현해야 하는데 이 흐름은 쉼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론 쉼표가 없어도 숨표를 사용하여 그 흐름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쉼표는 박자가 있는 쉼이고 숨표는 말 그대로 ‘a breathing mark.’ 즉, 박자는 없지만 잠시 숨을 쉬라는 표시이다. 예전 영어 시간에 어디서 끊어서 읽어야 할지 문장에 표시하던 기억이 있다. 음악 역시 어디서 호흡을 끊고 숨을 쉬고 아니면 계속 길게 이어가야 하는지가 음악의 흐름과 의미를 완성시킨다.

쉼표는 음악의 흐름을 담당하고 휴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강력한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과격한 대화가 오간 뒤에 찾아온 싸늘한 침묵, 이는 그간 오갔던 백 마디보다 더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한다.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진지한 대화 끝에 이어진 조용한 침묵. 그 침묵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서로가 안다. 이렇게 침묵은 어떤 현란한 말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있다. 조용히 내쉬는 한숨. 1초 후에 어떤 말을 할지, 이 못 견디는 침묵이 1분 넘게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어지는 깊은 한숨 소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날카로운 칼로 도려낸다. 음악에서 쉼표도 마찬가지다. 조용한 쉼표 후 찾아오는 음표는 새로운 강력한 힘을 전달한다. 작곡자가 한 박을 쉴지, 두 박을 쉴지 아니면 반주로 길게 대신하면서 독주 악기를 계속 쉬게 할지 연주자는 작곡자가 기록한 쉼표를 그 의도대로 정확하게 연주해야 한다.

가사 위에 음의 높낮이를 표시한 네우마
가사 위에 음의 높낮이를 표시한 네우마

대화 중 찾아온 조용한 응시, 이런 강력한 침묵이 연인들 사이에만 있을까? 거역하면 안 될 것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윗사람이나 어른들의 조용한 침묵도 있고, 서로 할 말이 없을 때 찾아오는 지루한 침묵도 있다. 이럴 때 지루함을 못 견디는 사람이 먼저 아무 말이라도 이어가는 것처럼 작곡자들도 한 번 썼던 주제를 다시 한번 반복한다거나 변형시킨다거나 하는 방법을 쓰면서 긴장을 풀어가기도 한다.

또, 잠시 쉬고 들어가는 쉼표에는 유머도 있다. 한 박자 쉬고, 반 박자 쉬고 들어가는 음악에서는 살짝 눈치 보면서 이야기할 타임을 조절하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데이트를 앞둔 사람의 행복한 긴장감을 엿볼 수도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 살짝 넣어 망설임을 표시하는, 의도가 빤히 보이는 얌체인 앞차의 엉덩이 같은 쉼표도 있다.

세미브레비스부터 각 음표는 3배의 길이를 가진다.(두플레스 롱가는 롱가의 2배)
세미브레비스부터 각 음표는 3배의 길이를 가진다.(두플레스 롱가는 롱가의 2배)
브레비스와 롱가가 발전된 음표
브레비스와 롱가가 발전된 음표

재즈나 가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당김음은 악센트의 위치를 바꿔서 음악의 분위기를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강약 중강약, 강약약을 약강으로 만드는 것이다. 당김음 즉, 싱커페이션을 만드는 가장 흔한 방법은 붙임줄을 이용하여 악센트의 위치를 뒤로 미는 것과 기호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쉼표를 이용하는 것이다. 강이 들어가야 할 위치에 아예 쉼표를 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강의 위치를 뒤로 밀어낸다. 이렇게 쉼표는 음악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된다.

쉼표는 음표와 짝을 이루고 있지만, 음표와 쉼표가 나타난 시기는 천 년이 훨씬 넘는 차이가 있다. 악보를 기호로 나타내는 기보법은 음의 높이와 길이의 정확한 표현이라는 두 가지 갈래로 나뉜다. 음의 높이는 초기 그리스에서 음이름으로 표시하던 시기를 지나 중세시대 네우마에 이르기까지 기보법의 초기부터 발전해 왔지만, 길이 즉 박자의 표시는 상대적으로 12세기 이후 공가, 브레비스 등에 의해 늦게 나타났다. 더욱이 쉼표는 13세기 후반에 나타났고, 이후 15세기의 꼬리와 점음표, 마디 등이 나타났다.

그럼 옛날 음악에는 리듬이나 박자가 없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모테트나 그레고리안 찬트 등을 현대 악보로 옮겨 놓은 것을 보면 오늘날 사용되는 박자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자연의 이치나 수학의 공식을 몰라도 그냥 느낌으로 생활 속에서 숫자를 사용했던 것과 비슷하다. 증명과 논리를 통하여 만들어진 이론처럼 하나의 정확한 기호로 쉼표까지 사용하여 음의 길이를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발전된 수준의 음악이다. 주변에서도 노래 부를 때 음정은 알겠는데 박자와 리듬을 더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동안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던 쉼표는 음표보다 훨씬 더 상위의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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