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칼럼] 미학(味學)의 미학(美學)
[대림칼럼] 미학(味學)의 미학(美學)
  • 신문봉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사무총장
  • 승인 2023.10.09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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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먹방(먹는 방송)이 유행이다. 나는 처음엔 먹방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고 시청 포인트가 뭔지도 잘 몰랐다. 주변에 먹방을 즐겨보는 친구가 있었다. 참 바쁘게 사는 친구인데도 먹방을 챙겨본다는 게 한편으론 신기했다. 궁금해서 한번 물어봤다.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냥 대리만족 같기도 하고, 스트레스 풀면서 힐링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단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알고리즘에 이끌려 조금씩 먹방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본 먹방은 먹방의 전부는 아닐 테다. 그런데도 내가 봐온 것에 한정해서 생각할 때 먹방에는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방송 시간이 길고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다. 음식 하나를 관찰하고 음미하는 과정은 섬세하고도 천천히, 어찌 보면 비효율적인 감을 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먹방을 시청하는 걸까? 먹방으로 힐링된다는 친구의 말을 핵심 단서로 접근해볼 때, 그것은 먹방이 지니는 ‘현재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현대인들은 참 분주하게 살아간다. 이를 달리 말하면 ‘현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겠다. 사람들은 스스로 현재에 고도로 집중하여 현재를 효율적이고도 충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르게 보면, 열정을 쏟아부은 그 현재는 어쩌면 ‘과거에 의한 현재’ 또는 ‘미래를 위한 현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막상 거기엔 ‘현재로서의 현재’는 빠져 있다. 즉 현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때론 너무 많은 ‘과거’와 ‘미래’가 들어온 건 아닌지, 사람들이 집중했던 것은 사실 현재 속의 ‘과거’ 또는 현재 속의 ‘미래’는 아닌지 싶다.

만약 이런 접근이 가능하다면, 먹방에 대한 이해는 조금 새로워졌다. 말하자면 먹방은 시청자가 방송인과 함께 현재의 ‘맛’에 집중함으로써 잠시나마 현재 속의 과거와 미래를 밀어내고 오로지, 그리고 단순하게 ‘현재의 현재’(맛)에 머물러보는 것이다. 맛이란 현재성이 강한 것 같다. 음식이 미뢰에 닿을 때만 맛은 살아 있다. 입속에 들어가서 맛을 내고, 삼키면서 향이 남기까지 모든 것이 ‘현재(현재의 현재)의 집중’이다.

여기엔 과거나 미래는 들어설 틈이 없게 된다. 방송인이 음식 먹을 때의 표정, 반응, 평가, 그리고 집중 이러한 일련의 것이 모두 시청자와 함께 하는 현재의 집중이 아닐까. 그렇다면 먹방이 길고 느린 이유도 최대한 시청자와 함께 ‘현재의 맛’에 오래 머물면서 집중하기 위함인 것 같다.

여느 때와 같이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오늘도 밥 친구와 함께 늘 다니던 식당에서 늘 시키던 음식을 주문한다. 평범한 밥상을 앞에 놓고 문득 호기심에 난생처음 먹어본다는 심정으로, 미식가의 자세로, 정중히 시식에 임해본다. 맨날 먹던 익숙한 반찬이 생각보다 간이 맞고 맛있음에 다소 놀라웠다. 익숙한 맛에서 새로운 맛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식당은 여전히 분주하다. 사람들은 얘기에 바쁘고, 먹기에 바쁘고, 다시 일터로 나가기에 바쁘다.

다음의 일정을 위해 ‘후루룩’ 했던 한 끼의 맛은 이렇듯 현대인의 익숙함에 가려져 망각된 것은 아닌지 싶다. 분주한 현대인들은 어제 밀린 업무에 쫓겨서, 내일 준비할 보고를 위해서 현재를 열심히 살아간다. 그 노력은 분명히 유의미하나 가끔은 쉼터가 필요하다. 그 쉼터는 멀리 있지 않으며 바로 지금, 현재에 있지 않을까. 출퇴근길에 피어 있는 저 꽃 한 송이를 정중히 ‘맛보기’, 머리 위에 떠도는 저 한 점의 구름을 천천히 ‘맛보기’… 미식가처럼 현재의 ‘맛’에 집중하면서 현재에 온전히 머물러보기, 그것이 미학(味學)의 미학(美學)이 아닐까.

필자소개
고향은 연변. 재한조선족작가협회 사무총장, 재한동포문학연구회 사무국장. 현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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