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칼럼] 남편 성씨(姓氏)를 따라가는 미국
[김재동칼럼] 남편 성씨(姓氏)를 따라가는 미국
  • 김재동(재미칼럼니스트)
  • 승인 2023.10.23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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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한인교회에 참석했던 첫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교회는 성도들끼리 서로에게 형제자매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부부들의 성이 다 똑같았다. 김 아무개 형제님 김 아무개 자매님, 이 아무개 형제님 이 아무개 자매님, 이 교회 사람들은 같은 성씨끼리 결혼 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나는 그런 의구심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몇 주 후 미국인 남자와 결혼한 성도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그 여성도분을 교회에서 로우 자매라고 불렀다. 이상했다. 분명 정씨 성을 가진 한국분인데, 왜 로우 라고 부를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미국(서양)에서는 남편 성(姓)을 따라가는 것이 그들의 결혼 문화 중 하나였던 것이다.

서양에서 결혼한 여성들이 남편 성(姓)을 따르는 문화적 배경에는 가부장적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남녀평등이 보편화 된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2020년 10월 3일 BBC 보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영국 기혼 여성의 90%가, 미국 여성은 70%가 각각 남편의 성으로 바꿨으며, 개인주의와 남녀평등 인식이 팽배한 서양에서 여전히 남편 성을 따르는 전통이 강력한 문화적 규범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BBC는 페미니즘 시대에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통계는 다소 놀라운 수치라고 설명했다.

반면 남편 성을 따라야 할 것 같은, 유교 사상과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가부장적 역사가 어느 나라보다 깊은, 한국에서 오히려 결혼 전 성(姓)을 지켜왔던 역사적 배경이 궁금했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우리의 결혼제도를 살펴보면, 고구려의 서옥제(壻屋制)가 있었다.

그 풍속은, 여자의 집 본채(大屋) 뒤편에 작은 별채(小屋)가 있었는데, 그것을 서옥(壻屋)이라고 불렀다. 해가 저물 무렵 신랑이 신부의 집에 도착하여 자기 이름을 밝히고 절하며, 그곳에서 머물기를 청했다. 이렇게 두세 번 거듭하면 신부의 부모는 비로소 서옥에서 지내도록 허락했다. 신랑이 가져온 지참금과 지참품은 서옥에 보관했다. 아이를 낳아서 어느 정도 자라면, 신랑은 아내를 데리고 본가로 돌아갔다.

이 서옥제의 흔적은 ‘장가(丈家)를 든다’란 말로 아직 남아있다. 이런 풍습이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신랑이 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올린 후 몇 년 살다가 자식이 크면 본가로 갔다. 당시에는 이를 처가살이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거쳐야 할 의식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장가든다’는, 고구려 시대 신랑이 장인의 집인 장가(丈家)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가 첫 아이를 낳은 뒤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던 결혼 풍습에서 유래 된 것이다.

서옥제란 풍습에 대해 인류학자들은 고대 한국 사회가 모계 사회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여성 부족, 아마조네스 같은 전형적인 모계 사회였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의 여성 권익보장 차원이라기보다는, 신부 쪽 가문(家門)이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문화권인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결혼한 여성은 대부분 남편의 성을 따른다. 중국도 공산당 집권 이전인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 결혼한 여성이 남편 성을 따르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5천 년 역사를 통틀어 그런 문화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성이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여권(女權)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대 국가인 고구려의 서옥제가 시사하듯,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것은 분명 여권과 상관관계가 있으며, 남녀평등사상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에 온 지 2년 만에 나는 결혼을 했다. 결혼 전 아내의 성(姓)은 나와 같은 김 씨였다. 다행히 동성동본은 아니라서, 아내 쪽으로부터 반대는 없었다. 아내는 본이 김해(金海)였고, 나는 광산(光山) 이었다. 내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성을 김 씨로 바꾸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김 씨인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필자소개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거주
작가, 한국문학평론과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와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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